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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절감·책임 회피에 떠밀려… ‘안전할 권리’ 빼앗긴 거리의 미화원 [탐사기획-당신이 잠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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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17 17:48:11 수정 : 2025-12-17 23:15:13
탐사보도팀=조병욱(팀장)·백준무·배주현·정세진 기자, 사진: 최상수 기자, 편집: 도진희 기자, 미술: 권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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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외면 받는 원칙

안전공백 부른 책임의 외주화
정부 가이드라인 ‘있으나마나’
지자체 51% 야간근무… 87% 3인 1조 어겨
당국 규정 권고뿐… 그마저도 ‘예외’ 남발
“기후부 심의 거쳐 실효성 높여야” 지적

민간 대행에 맡겨… 안전은 뒷전
72%는 대행 운영… 지자체는 감독 부실
임금 후려치기·수의계약 비위 ‘수두룩’
“안전 규정 법제화·유리알 관리 나서야”

환경미화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는 지역마다 다르게 값이 매겨진다. 정부가 제시한 ‘3인 1조 작업’과 ‘주간 근무’ 원칙은 서류 속 기준으로만 전락했다. 90%에 가까운 기초 지방자치단체는 3인 1조 원칙을 외면하고 있고, 절반 이상의 지자체는 야간 근무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자체들이 민간에 업무를 떠넘긴 사이, 현장에서 예외는 확산됐고 책임은 사라졌다. 관리감독 책임마저 방기하면서 구조적 무책임은 고착화됐다.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에 제출한 ‘2024년 지자체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안전기준 이행실적’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8개 기초 지자체(세종·제주 포함, 기초단체) 중 198개(87%)가 지난해 기준 3인 1조 작업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인 1조 원칙을 준수하는 곳은 인천 강화군, 충북 옥천군, 전남 담양군 등 소도시가 대부분이었다.

 

주간 근무 원칙도 상황은 비슷하다. 주간 근무를 시행하지 않는 지자체는 116곳(51%)으로 절반이 넘는다. 특히 인구 1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도시에서 야간 근무 경향이 두드러진다. 서울은 25개 구 중 2개 구(강동·도봉)만 주간 근무를 실시 중이다. 부산(16개 구·군), 대전(5개 구), 울산(5개 구·군)은 주간 근무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기후부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을 통해 환경미화원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원칙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운전원 1명과 상차원 2명이 한 조를 이뤄 작업할 것, 주간(오전 6시∼오후 10시)에 근무하게 할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 원칙은 현실에선 무력하다. 법적 강제력이 없는 권고적 성격에 그치다 보니 대부분 지역에서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당장 기후부부터 구조적 무책임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지자체가 원칙을 준수하기 어려운 상황을 자체 조례로 명문화하면 이를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자체장 재량에 따라 얼마든지 조례를 통해 ‘셀프 예외’를 허용하는 길을 열어둔 셈이다.

3인 1조 원칙 미준수 지역 중 하나인 서울 종로구가 대표적이다. 종로구는 ‘폐기물 관리 조례’를 통해 ‘3명 1조 작업의 예외 사유’로 다섯 가지 항목을 들고 있다. 손수레를 이용해 작업하는 경우, 기계적 수거장치를 사용하는 경우, 적재 중량 1.5t 이하의 차량을 사용하는 경우, 민원처리 목적의 폐기물 처리 기동반 작업의 경우, 그 밖에 폐기물의 종류와 작업 환경 등을 고려해 구청장이 인원 조정이 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마저도 지킬 의지가 없는 지자체들도 여전하다. 원칙적으론 3인 1조가 불가능할 경우 조례에 예외 사유를 명시해야 하지만, 강원 동해시, 충북 제천시·보은군·영동군 등 4곳은 절차를 누락했다. 영동군 관계자는 “읍·면에 골목이 많아 1t 소형 트럭을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3인 1조 작업이 어려워 2인 1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4개 지자체 모두 내년 상반기 중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지자체가 노동자의 생명이나 안전, 근로 기준을 침해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선에서 예외 사항을 둬야 한다”며 “기후부 심의를 거쳐 예외 규정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제도에 실효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사정은 있다.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는 일부 지역은 주간 전환을 검토하고 있지만, 예산 부담과 주민 민원 등 복합적인 이유로 망설이고 있다. 서울 금천구는 2023년 6월 4주에 걸쳐 생활폐기물 주간 수거 시범 운영에 나선 바 있다. 시범 운영 결과 현장에서는 오히려 수거가 한층 수월해졌고, 피로가 줄었다는 의견이 나왔다.

 

당초 지난해 1월 주간 근무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야간 수거를 하고 있다. 박정현 금천구 청소행정과 주무관은 “낮에 청소차가 운행하면 어린이와 노인들이 다칠 위험이 크고, 도로 교통 정체도 우려된다고 판단했다”며 “서울의 타 기초단체와 상황을 비교했을 때 우리 구가 선도적으로 주간 근무에 나서는 것도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밤 서울 금천구의 한 주택가에서 형광색 작업복을 입은 환경미화원이 청소차 적재함에 쓰레기봉투를 싣고 있다. 최상수 기자

◆민간 대행의 그림자

 

쓰레기 종량제 시행 30년,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쓰레기 수거 업무는 민간이 사실상 전담하고 있다. 228개 기초단체 중 자료를 제출한 215곳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민간 대행 비율은 올해 기준 72.6%에 달한다. 직영과 공영(공사·공단 대행)은 각각 12.6%, 1.4%에 직영과 공공 대행, 민간 대행 혼합 운영은 13.5%에 그친다.

 

종량제 도입과 함께 민간 대행 구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1995년 실시된 쓰레기 종량제를 설계한 박준우 상명대 명예교수는 “종량제를 도입하면서 처음으로 ‘원가’와 ‘비용’ 개념이 쓰레기 수거에 들어왔다”며 “전국 지자체의 처리 원가를 계산해보니 낭비 요소가 많았고, 효율화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회고했다. 비용 절감 논리가 민간 대행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는 비용 절감보다 책임 회피가 민간 대행의 진짜 동기가 됐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지자체가 정규직 고용에 따른 안전사고 부담을 피하기 위해 대행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경북 구미시의원 시절 관련 문제에 천착했던 시사평론가 김수민씨는 “민간 대행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대행을 선택한 지자체의 태도와 감독 부재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실제 비용 절감 효과는 크지 않다”며 “책임을 줄이고 공공서비스의 영역을 줄이겠다는 관성이 1990년대에 시작돼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폐기물 수거 시장에 한번 진입한 업체는 계속 기득권을 유지하며 성역화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생활폐기물 수거산업 경쟁활성화 방안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9∼2023년 권역별 입찰 자료 538건을 분석한 결과 1개 업체만 참여한 입찰이 79.9%(430건)로 가장 많았고, 2개 이상이 참여한 입찰에서도 실질적 경쟁률이 1대 1 이상인 입찰건은 5.4%(29건)에 불과했다. 특히 생활폐기물 처리 업체의 평균 업력은 18.5년으로 전체 폐기물 처리 업체 평균 9.8년보다 길었다. 민선 지자체장은 임기 만료로 지역을 떠나도, 업체는 남는다. 지자체들이 관리감독 차원에서 개입할 틈이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전날 국무회의에서 “청소 대행이 부패구조 아닌가”라며 성남시장 시절 청소 대행업체 선정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청소업체가 열몇 개가 되는데 그 대행 회사의 권리금이 20억∼30억원에 달하더라. 성남시 청소업체를 선정할 때 기존 관행에 따르지 않고 사회적 기업과 계약했다”고 설명했다.

 

반복되는 특혜와 비위 적발은 의혹이 아니라 실체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후부의 ‘최근 10년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 계약 체결 관련 위법 사례’ 자료와 취재팀이 추가적으로 파악한 감사원 감사 결과 총 54건을 살펴보면 부적정한 계약 체결 사례가 29건이나 발견된다. 원가·대행비 산정 부적정(7건), 노무·인건비 관리 부실(7건)도 단골 사례다.

지난달 17일 밤 서울 금천구의 한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에서 환경미화원이 일반쓰레기 봉투를 청소차 적재함에 싣고 있다. 최상수 기자

감사원은 지난해 종로구에 대해 2024~2026년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용역 계약을 준비하면서 직접 노무비를 과하게 계산하고 이미 내용연수가 지난 차량 11대를 감가상각 대상으로 포함해 약 4500만원을 과다 산정했다고 지적했다. 구는 지적을 반영해 계약을 체결하고 향후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2022년 공정위는 마포구청이 2017년과 2019년에 발주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용역 입찰 과정에서 담합 혐의을 확인하고, 4개 대행업체에 총 8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민간에 맡겼던 쓰레기 수거 업무를 다시 직영이나 공영으로 되돌리는 재공영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석진 진보정책연구원장은 “재공영화는 환경미화원의 고용 안정과 안전을 강화해 서비스 질까지 높일 수 있다”며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가 주민을 위한 필수 공공서비스로 재정립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대행 구조 자체보다 관리 부재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채준호 전북대 경영학과 교수는 “민간 대행 구조에서 기초단체는 ‘계약 관리자’ 수준에 머물고 실제 작업 환경은 업체 재량에 크게 의존하는 실정”이라며 “대행업체 평가 항목도 민원 건수, 청소 상태 등 외형적 지표에 치중돼 노동자가 안전할 근로 조건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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