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 英 ‘메이데이’처럼 건강·풍요 기원
화폭 위 몽환적 색채로 군중 소망 담아
‘춘향전’ 등 한국 문학 적극적 재해석도
비너스와 접목해 동서양 경계 허물어
生의 에너지 펼쳐낸 80m 폭 대형 벽화
작가의 ‘자연 속 삶 회복’ 축제관 드러내
흩날리는 한복 자락과 오방색 깃발. 산 너머 메아리치는 북소리와 날카롭게 고공하는 꽹과리 소리가 하늘을 가르며 깨지면 그 틈 사이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관객과 무희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달콤 쌉싸름한 술 향기가 후끈대는 공기 속을 타고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분홍빛 연희의 열광 속에서 웃고, 떠들고, 먹고, 뱉어내며 찬란한 순간을 온몸으로 들이마신다.
한국 전통 축제의 풍경이 물을 머금은 듯 몽환적인 색채와 안개처럼 번지는 붓질 속에서 낯설게 부유한다. 독일에서 태어나 현재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피 폰 헬러만(1975∼)이 그린 한국의 명절 ‘단오’의 모습이다.

◆기념과 믿음의 장
소피 폰 헬러만의 국내 첫 개인전이 4월 9일부터 마곡동 스페이스K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축제’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봄 명절, 단오에서 출발한다. 1년 중 태양의 기운이 가장 센 음력 5월 5일,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던 단오는 회복과 휴식을 위한 날이었다. 씨름과 그네, 음식과 제사로 채워진 단오는 사람들의 웃음으로 가득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작가에게 단오는 생소한 명절이 아니었다. 5월의 첫날, 여름의 시작을 기념하고 건강과 풍요를 염원한 영국의 메이데이처럼, 폰 헬러만은 단오에서 삶을 ‘기념’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처럼 사람들의 믿음과 소망이 집단적으로 피어오르는 것에 관심을 둔다.

◆언어와 시공의 경계 너머
독일과 영국을 오가며 성장한 그에게 회화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적 매체였다. 두 문화권의 언어, 정서, 사고방식이 완전히 호환되지 않는 틈 속에서,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과 사유를 시각적으로 탐색해 나갔다. 동시에 시공을 초월한 인간 보편의 감각이 반영된 신화와 고전에 자연스레 이끌렸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문화적 참조가 아니라, 차이를 연결하고 분열을 봉합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작가는 고전의 서사와 현대의 상징을 결합하여,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환상적 지형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춘향전’과 같은 문학 작품을 적극적으로 인용했다. 특히 ‘춘향전’ 속 두 주인공은 특유의 표현주의적 화법으로 인물의 정서를 극대화하여 고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몽룡은 붉은빛을 머금은 화살을 힘껏 쏘는 듯한 모습으로, 춘향은 생기를 머금은 표정과 춤추듯 유려한 자세로 그려 각각 큐피드와 비너스를 연상시키는 인물로 묘사했다. 주로 감정과 몸짓의 표현을 절제한 한국 전통 회화와 달리, 작가는 강렬한 색채와 리듬감 있는 화면 구성으로 동서양의 상상력이 스며든 장면을 만들어냈다.
◆소피 폰 헬러만의 ‘천지창조’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높이 9m, 폭 80m에 달하는 미술관 벽면을 불과 물, 산과 바다로 가득 채웠다. 폰 헬러만의 붓끝에서 일어난 ‘천지창조’는 축제라는 현상 이면에 흐르는 근원적 에너지로 되돌아간다. 불꽃과 회오리바람, 하늘을 뒤흔드는 뇌우는 파괴적인 힘을 행사하지만 그 속에서 찬란한 무지개를 피워낸다. 요란한 천지개벽이 일어난 자리에는 찬란한 사계절이 차례로 펼쳐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축제의 장을 연다. 벽에 걸린 그림들이 축제의 순간을 포착한다면, 그것의 배경이 되는 벽화는 만물을 생성케 한 자연의 원초적 모습이자, 축제가 생성하는 격변의 에너지와 창조력으로 이어진다.
폰 헬러만의 벽화는 단순히 축제가 벌어지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생성과 소멸, 질서와 혼돈이 뒤얽힌 하나의 우주가 된다. 그 안에서 축제는 단지 흥겨운 장면이 아니라, 삶을 일으키는 생명의 파동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거시적 힘(생명의 기원)과 미시적 힘(개인이 발생시키는 에너지)이 교차하며 서로를 증폭시키는, 역동적인 생(生)의 공간을 펼쳐낸다.
◆끝나지 않는 축제
축제의 장면은 미술사에서 시대와 작가에 따라 다양한 함의를 품고 그려졌다. 제임스 앙소르(1860∼1949)가 인간 내면의 불안과 사회적 위선을 드러내기 위해 기괴한 가면으로 가득 찬 카니발을 그렸다면,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1864∼1901)은 벨 에포크 시대 프랑스의 활기를 현실에 기반한 관능적 풍속화로 담아냈다.
이와 달리 소피 폰 헬러만은 축제를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삶을 회복하는 집단적 의식’으로 승화한다. 그것은 투쟁이나 갈등의 현장이라기보다, 인생의 고단함을 웃음과 유희로 환원하고, 뱉어냄으로써 다시 들이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한 소피 폰 헬러만의 제전은, 러시아 사상가 미하일 바흐친(1895∼1975)의 ‘카니발리즘’ 개념과 공명한다. 바흐친은 축제를 단순한 욕망 실현의 장이 아닌, 경직된 일상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억눌린 생의 에너지를 해방하는 비일상의 시공간으로 보았다. 육체적 행위를 수반한 온갖 놀이와 시끄러운 이야기, 상류층에 대한 풍자와 전복이 깃든 축제는 기존의 위계와 규범을 해체하고 억압된 감각을 분출시키는 민주적 ‘광장’이 된다. 폰 헬러만의 작품에서도 축제는 이러한 해방의 무대로 펼쳐진다. 감각과 상상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가능성의 공간에서,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동시대 신화가 새롭게 구축된다.
소피 폰 헬러만이 그려낸 달큰한 축제의 장면들은 생성과 파괴가 순환하며 자연이 지속하듯, 기쁨과 슬픔의 교차 속에서 인간이 성숙하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상기한다. 따라서 작가가 포착한 ‘순간’들은 덧없이 흘러가며 소멸하는 시간의 조각이 아니라, 찰나 속에 영원이 있다고 속삭인다. 삶을 축복으로 바라보는 이러한 긍정의 시선은 인생의 여정을, 무수한 별들이 수놓아진 밤하늘처럼 빛나게 한다. 축제 그 자체로서의 삶. 그렇기에 축제의 소음과 열기가 가셔도 축제는 끝나지 않는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신리사·전시기획자, 학고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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