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혜영, 같은 나이대 연기 되레 다행
연출 자유 보장도 원저작자가 갖는 의무”

“(‘파과’ 영화가) 이만큼 나오기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원작 초월’이라 생각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영화 ‘파과’가 개봉을 앞둔 가운데,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의 원작자 구병모 작가는 영화를 관람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구 작가는 전날 오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서 많은 관객과 함께 처음으로 영화를 봤다. 그는 영화 제작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고, 시나리오조차 보지 않았다.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파과’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마치고 귀국한 민규동 감독과 지난달 처음으로 만났지만, 그때도 각색의 방향성에 관한 대화는 전혀 나누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판권 계약서 작성 때부터 아예 간섭하지 않기로 못 박았다는 구 작가는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저작의 2차 판권 계약을 맺을 때 원작자가 작품에 대한 권리만 갖는 게 아니라 의무도 함께 진다고 생각해요. 그 의무란 연출자에게 연출의 자유를 보장하고, 설령 제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결과물이 흘러간다 하더라도 연출자를 믿는 것이죠.”
구 작가는 ‘파과’ 영화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며 영화를 본 소감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잘 봤다. (영화가) 이만큼 나오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원작보다 낫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파과’가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3년 책 출간 직후부터 영화화 제안이 잇따랐지만, 여러 복잡한 사정을 거치며 영화 개봉까지 12년이 흘렀다. 그사이 사회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고, 이 때문에 소설과 영화의 어떤 장면에선 묘하게 옛날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설의 첫 장을 가져온 영화 도입부의 ‘지하철 빌런’ 장면이 그렇다. 중년 남성이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은 여성에게 욕지거리를 퍼붓고 위협한다. 구 작가는 “예고편에서 이 장면을 보고 일부에선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주변에서 모두 폰으로 찍어서 응징할 텐데 이상하지 않나’ 하는 반응이 나왔다”며 “소설을 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도 많았고, 심지어 지하철에서 종이 신문을 펼쳐보는 승객들도 남아 있었다”고 웃었다.
이 때문에 영화가 조금 더 일찍 세상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을 품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이 적기’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조각 역의 이혜영 캐스팅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제야 영화가 나왔기 때문에 실제 60대인 이혜영 선생님이 60대 조각으로 출연했다는 점 아닐까요. 만약 영화가 10년 전에 나왔다면 젊은 배우를 캐스팅해 노인 분장을 하거나, 주인공 나이를 대폭 낮췄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맞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구 작가는 영화 ‘파과’가 민규동 감독과 출연진·스태프들에게 인상적인 경험이자 기념할 만한 필모그래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흥행 기대감도 전했다.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제작사도 후회하지 않을 테고, 향후에도 여성 주연 영화가 나올 토대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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